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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기 싫다고 했더니,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오늘의 이슈썰 2021. 12. 12. 22:01

남편과 나는 결혼을 준비하며 신혼집으로 남편이 혼자 자취하던 9평 원룸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방 두 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집이 아닌 원룸 자취방에서 신혼을 시작하겠다는 나를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 뜯어 말렸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그곳에서 계속 살려고 했던 건 아니다. 남편의 원룸 계약 기간이 꽤 남아있기에, 결혼하고 살면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신혼집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원룸에서의 신혼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더 큰 집으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원룸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집이 작아서 관리비를 비롯한 유지비가 굉장히 적었다. 한여름과 한겨울에 냉방과 난방을 마음껏 틀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이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집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벽 한쪽 면이 통창이라서 탁 트인 느낌이 나고, 채광도 좋고, 주변 편의시설도 잘 형성된 역세권에, 주인집과 함께 거주해서 관리가 매우 잘 되는 신축 건물이라는 것까지도 모두 다 내게 호감으로 다가왔다.

각자 자취하며 쓰던 전자제품과 가구를 그대로 사용하며 신혼을 보냈다. 혼수를 위해 따로 준비해 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살면서 불필요하다 여겨지는 소형 가전용품들을 중고 매장에 내다 팔아서 돈을 벌었다. 함께 살면서 필요하다 여겨지는 것들만 신중하게 구입했다. 큰 집을 위해 대출한 큰 빚도 없기에 월급의 대부분은 저축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하는 과정에 참 많이 들었던 말이 “다들 그렇게 해”였다. 다이아는 5부 이상은 받아야지, 신혼집은 그래도 20평 이상은 되야지, 샤넬백 정도는 받아야지. 그런 삶이 싫다고 했더니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것들을, 마음이 내키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살아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일부러라도 어른이나 친구들에게 결혼식이나 비용에 대한 조언을 구하진 않았다. 비교에는 끝이 없어서 내가 주눅이 들거나, 결혼을 포기하게 되거나, 스스로 무리하게 될 것 같았다. 남들에게 묻는 대신 나 자신에게 끊임 없이 물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그렇게 나 자신을 알아갈수록 나다운 결혼식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남편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비워내고 그 대신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 만큼 채워 나갔다. 결혼반지를 하지 않고 그 대신 양가 부모님 건강검진을 해드렸고 웨딩사진, 예단, 예물을 하지 않고 그 돈을 신혼여행에 더 투자했다. 결혼 하며 다이아 반지를 받지도 않았고, 남편에게 명품시계를 선물해주지도 않았다. 샤넬백도 없고, 20평 아파트는 커녕 열 평도 채 안되는 신혼집에서 살고 있다. 아! 우리는 자차도 없다. 남들이 말하는 기준치에 어느 것 하나도 닿지 못하는 결혼식과 신혼생활이지만, 결혼 이후 내 삶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싶을 만큼 만족스럽다.

 

결혼식을 계기로 우리 부부는 남들 기준이 아니라, 우리 부부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결혼 이후에는 돈을 모아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세계를 유랑하듯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은퇴 이후로 미루는 건 싫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 놓아야 했다. 남편은 대학 졸업 이후 줄곧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고, 겸업 강사직 제안을 거절해야 했고, 집 사려고 모으던 돈은 몽땅 여행 자금이 되었다.

애 없는 신혼 때 바짝 돈 벌어 집 사야 한다는 충고를 뒤로 하고, 그와 정 반대의 선택을 한 것에 대하여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세계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세계여행을 다녀온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되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거라는 긴 대열에서 벗어나면 뒤처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의 인생은 더 풍요로워졌다. 진짜 중요한 것은 다들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결혼하면 맞벌이 해서 빨리 돈 모아야하지,

돈 모으면 대출 가득 받아 아파트 장만해야하지,

아파트 장만하면 얼른 아기 낳아야하지,

아기 한 명은 외로우니 적당한 터울로 둘째 가져야지,

애들 공부 시키려면 돈 더 벌어야 하지,

그 다음엔 노후 준비 해야하지.

 

평생 쉴 틈 없이 계속 주어지는 과제와 숙제는 저만히 치워버렸다. 남의 눈치 보며 살 시간에 나는 이제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오직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을 언제나 내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산다. 언제나 밀린 숙제처럼 조급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던 삶이 비로소 축제처럼 다가온다.